개발자 되기 (feat.SSAFY)

SSAFY 1학기 수료 후기

쓱쓱565 2021. 12. 17. 23:55

  포폴을 정리하고 SSR로 구현된 웹사이트를 CSR로 통째로 리팩토링 했습니다. 덕분에 남들보다 2주 늦게 방학을 맞았습니다. 마감을 하고 나서도 며칠 동안은 '코딩을 해야 한다', '웹사이트 로직을 보강해야 한다' 등의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웠습니다. 5개월 동안 달고 살던 커피를 끊고, 잠을 푹 자고, 인라인을 많이 타고나니 이제야 좀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드디어 1학기 후기를 작성할 준비가 되어 글을 씁니다.

목차:

  1. 나는 왜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했는가?
  2. 싸피에서 무엇을 원했는가?
  3. 싸피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4. 싸피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5. 느낀 점
  6.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1. 나는 왜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했는가?

발단

  캐나다에서 요리사로 일했었습니다. 뜨겁고 습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매주 5일, 12시간씩 근무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즐거웠습니다. 매일 칼을 갈고, 레시피를 연구했습니다. 쉬는 날에는 다른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가 요리들을 먹어보고 그것들을 복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셰프의 정기 휴일마다 약 18인(요리사 3인 + 웨이터 15인) 규모의 주방의 센터에서 주방을 지휘해보았고, 직접 만든 메뉴를 시즌 메뉴에 올리는 명예도 얻었습니다. 제 메뉴가 기존의 시즌 메뉴보다 20% 정도 매출이 더 잘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만들었던 디저트 사진(요리 사진을 못 찾아 급히 대체)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요리사 시절을 그리워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셰프님이 캐나다 영주권을 지원해 줄 테니 같이 일 하자고 제안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건강 관리를 잘하지 못해 몸이 많이 망가졌었고, 아직 대학교도 졸업하지 못해서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만나던 친구의 뇌출혈 및 실어증 투병을 옆에서 함께 하며 허무주의에도 빠졌습니다. 당연히 구직, 진로 같은 것들에는 자연스레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도 2년간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했습니다. 1)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다 2) 웹소설 관련 프리랜서 일을 좀 하다 3) 무역, 해외영업 업무들을 알아보다 4) 국비 요리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며 구직을 시도했습니다. 제가 해왔던 것들과 연관성이 있는 분야들에 입사 지원을 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면접장에서는 항상 "00씨는 경험이 정말 많으시네요~" 하며 1)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나 2)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다양한 일을 해본 것은 1) 내가 좋아하고 2) 잘하기에 3) 책임감 있고 진정성 있게 일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내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었다는게 역설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요리사 일에서 아래의 것들을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하고
  • 매일매일 새롭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생기고
  • 하루하루가 도전이지만
  •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계획을 잘 세워서
  • 서로를 믿어주는, 협조적이고 솔직한 동료들과 함께
  •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 배우고 익히고 발전하는 일들

 

전개

  대치동 모 학원에서 디지털 컨버전스 작업을 주도하다 '코딩'이란 진로에 확신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어 내신 시험 시험지들을 정리하면서

1) 자료들의 효율적인 색인을 위해 엑셀에 DB 형태로 저장하고
2) 영어 지문들의 주요 키워드와 장르들을 정리하다 보니
3) 이것들을 키워드/장르별로 다시 추출해올 수만 있다면
4) 학생별 맞춤형 자동 문제 출제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다

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엑셀의 기본 함수와 정렬 기능만 활용해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부실하고 엉성했지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개발자란 직업에 대해  

  나도 일 그만두고 코딩이나 배워볼까?  

 

라는 밈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개발자'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수 있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개발자란 직업은

1)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고
2)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배워야 하며
3) 논리적 / 메타적 사고가 중요한
4) 전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5) 기술직

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던 직업이었습니다.

위기

  개발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도, 실제로 개발을 배우게 되기까지는 1년이 더 걸렸습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1) 업무량이 적은 중소기업에 취직한 뒤 2) 야간 국비 학원에서 코딩 수업을 들어보며 적성을 확인하고 3) 적성에 맞는다면 개발업무로 전향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꽤 괜찮은 계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있던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전 조건보다 훨씬 못 미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직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는 '00 씨 정직원 하시는 것 어떠냐'는 제안을 지속적으로 해주셨습니다.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여기서 계속 있다가는 그대로 안주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여기서 알바 하면서 1년간 취직 못 하면 나가서 코딩을 배우겠다.  


저는 1년동안 취직을 하지 못했습니다. 퇴사했습니다.

절정

  주위 사람들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퇴사하고 '딱 한 달만 놀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에 나왔던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하루에 10시간씩 했습니다. 살면서 눈칫밥을 가장 많이 먹었던 시기였습니다. 눈칫밥을 먹어가며 서울 약 10개 국비 학원들에 직접 가보고 상담도 받았습니다. 


  SNS를 보다 우연히 '싸피 서류 마감이 내일이니 지원해보라'는 광고를 봤습니다. 급하게 원서를 지원했습니다. 1주쯤 지나서 CT시험과 인적성 시험을 봤습니다. 잊을 만할 때쯤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받았습니다. 좋으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고양이가 스위치를 깔고 누워서 몬스터헌터를 할 수 없다는 내용


  '살면서 큰 기회가 세 번 온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싸피가 바로 그 세 번의 기회들 중 한 번임을 직감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체계적으로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면접 자리에서 심하게 긴장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어서 의료적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최선을 다 해 면접에 임했습니다. 심지어 PT면접에서도 제가 아주 잘 아는 부분이 나와서 자신감 있게 발표했고... 불합격했습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이전에 미리 연락해뒀던 국비 학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등록 의사를 밝혔습니다.

  국비 학원은 힘들었습니다. 진도가 느려서 갑갑했습니다. 어떻게든 혼자 배우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java 알고리즘 개론, 컴퓨터 과학 개론서 등을 사들였습니다.

  5일 차 수업이 특히나 좀 더 무시무시했습니다. '객체지향'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코드도 CS도 뭐도 없이 갑자기 붕어빵 틀이 어떠니, 사무실의 정수기가 어쩌니 하는 장황한 비유들을 두 시간째 들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싸피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싸피 추가합격 하셨는데 등록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결말

  국비학원 퇴소 수속을 밟았습니다. 당시 국민취업지원제도에서도 지원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국비학원에서 퇴소하자마자 '국비 학원을 퇴소하셨으니 2년간 국민취업제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받았습니다.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싸피에 입과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른 글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 싸피에서 무엇을 원했는가?

요리사 업무를 하며 좋았던 점들입니다.

  • 끊임 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하고
  • 매일매일 새롭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생기고
  • 하루하루가 도전이지만
  •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계획을 잘 세워서
  • 서로를 믿어주는, 협조적이고 솔직한 동료들과 함께
  •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 배우고 익히고 발전하는 일들


싸피에서도 비슷한 것들을 원했습니다.

  •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서로 돕고 발전해나가는 동료들
  • 함께 돕고 성장하는 학습 분위기 만들어보기
  • 알고리즘 공부 제대로 해보기
  • 열심히 살기


교육과정에서는 아래의 것들을 원했습니다.

  • 경제적 안정성 (한 달 100만 원 지원금)
  • 탄탄한 커리큘럼
  • 안정적이고 예상 가능한 운영

 

3. 싸피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서로 돕고 발전해나가는 동료들 😒 동료들(X) -> 동료(O)
  • 함께 돕고 성장하는 학습 분위기 만들어보기 😒 ->저는 매일 7~11시에 코딩을 했고, 그런 모습을 꾸준히 보여드릴 수 있어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모각코(모여서 각자 코딩) 에 거의 마지막까지 항상 참여해주신 두 분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으면 좋았겠지만 충분히 좋은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 알고리즘 공부 제대로 해보기 👍 알고리즘 공부 2개월만에 골드1, 삼성 모의 소프트웨어 역량평가 A+형 취득
  • 열심히 살기 👍제 자신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럽습니다.
  • 경제적 안정성 👍 교재비나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 탄탄한 커리큘럼 👍 노베이스 기준 진도가 많이 빠른 편입니다. 하지만 커리큘럼 자체는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 손목 및 허리 통증 🤔
  • 프로젝트 최우수상 👍상금! 상금!

 

연속 해결 112일!

4. 싸피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Hard skills Soft skills
1. 파이썬
2. 자바스크립트
3. 알고리즘
4. Django
5. Vue
1. 팀워크
2. 문제 해결력
3.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부 목표를 세우고 수정하기
4.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내기


  파이썬, 자바스크립트, 알고리즘, django, Vue 등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싸피에서 스터디를 두 개 운영하고,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직접 구현해보며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훨씬 더 큰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수업을 듣고 진도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함께 돕고 성장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 한 덕분에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값진 경험과 교훈을 많이 얻었습니다.

5. 느낀 점

  국비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개발 업무를 하는 다른 친구들과 종종 이야기 할 때마다 느낍니다. '어디서 하느냐가 아니라 네가 열심히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 나가면 누구나 좋은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싸피에 입과했느냐, 입과하지 않았느냐'하는 것들은 좋은 개발자로 성장하는 데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고 느꼈습니다. 잘하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게 정말 힘들다는 것,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내가 배운 것들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했던 교육생들일수록 코딩 실력도 더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모두가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좋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합니다.

6.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1. 취직은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미리미리 CS, 이산수학 등등을 배워보고 싶어요.
  2. 일주일에 3회는 인라인을 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세먼지 상태가 괜찮으면 좋겠네요.
  3. 백준 플래티넘 찍기! - 약 20문제만 더 풀면 달성할 수 있습니다. 올해 가기 전까지는 해봐야겠습니다.

 

최종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강에서 인라인을 타다가.